세상은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선과 악이 섞여 있고, 믿음과 현실이 부딪히며,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한계가 교차하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이슬람 사역을 잘 감당하던 한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오랜시간 언어와 문화를 익히며 사람들의 마음에 복음을 심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추방”이라는 냉정한 현실 앞에 가족은 짐을 싸야 했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단절, 그리고 자녀들의 언어와 정체성의 혼란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자녀들은 “왜 하나님이 이런 일을 허락하셨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 MK를 만났을 때 거의 1시간을 눈물로 대화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MK로 자라서 하나님을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이 너무 멀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너를 연단하셔서 귀하게 사용하실 거야.”라는 말은 누군가의 위로였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 이MK에게는 오히려 깊은 고통의 상처를 누르는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의 MK는 그 위로?의 말에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이야기 이제 그만해주세요.” 그 말 속에는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신앙의 언어가 감당하지 못한 현실의 무게가 담겨 있었습니다.
또 다른 형제는 선교사 자녀로 자라 후배 MK(선교사 자녀)들을 섬기며, 상처 많은 MK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왔습니다. 그런데 결혼과 함께 그의 아내가 희귀 말기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루아침에 삶의 언어가 바뀌었습니다. “사역”과 “소명”의 자리에서 “투병”과 “죽음의 그늘”로 옮겨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삶에 종종 정답의 언어들이 있지만, 성경의 하나님은 침묵의 하나님으로도 나타나십니다. 욥에게, 엘리야에게, 그리고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서 그랬습니다. 그 하나님의 침묵이 우리에게도 가장 힘든 시간인것 같습니다.
“그만해”라는 말은 어쩌면, 하나님을 향한 완전한 거절이 아니라, “조금만 기다려줘. 지금은 말보다 눈물이 먼저야.” 라는 신앙의 다른 언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믿음이란, 고통을 이기는 능력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를 놓지 않으신다는 “믿음의 기다림”이란 생각을합니다.
그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