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참으로 기묘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지금보다 과학이 발전하고 편리한 세상은 없었습니다. 앉아서 전 세계의 정보를 얻고, 나만의 자유를 누립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은 점점 더 거칠어만 갑니다. 대화는 사라진 자리에 날 선 분노가 들어앉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정죄하고 편을 가르는 것이 익숙해졌습니다. 물리적 전쟁뿐 아니라 경제와 세대 간의 갈등이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 우리의 평안을 송곳처럼 찌르고 있습니다.
한 철학자의 말대로 “야만이란 과거 원시 시대의 유물”이 아닙니다. 현대의 야만은 이상적인 이념과 국가 권력등의 다양한 이름과 합리화된 폭력으로도 나타납니다. 즉, 인간을 하나의 인격이 아닌, 집단과 체제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순간, 야만은 자연스럽게 우리 곁에 언제나 나타납니다.
성경적 야만은 '하나님 중심의 질서가 무너진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6장 11절은 노아 시대의 타락을 ‘부패(샤하트)’와 ‘포악(하마스)’이라는 단어로 설명합니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실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여 존재 자체가 왜곡되고(부패), 그 결과 힘 있는 자가 약자를 짓밟는 구조적 폭력(포악)이 가득 차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결국 야만이란,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인간의 욕망과 권력을 절대화하여 세운 ‘하나님 없는 힘의 지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십자가의 증인’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내 안에 꿈틀거리는 분노와 정죄의 야만성을 십자가 앞에 못 박읍시다. 그리고 상처받은 이의 곁에 조용히 앉아주고, 사랑과 긍휼이 필요한 곳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흘려보냅시다. 그 작은 순종이야말로, 거칠어진 이 시대를 치유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마음으로 누군가의 손을 잡는 그 순간, 야만의 시대는 힘을 잃고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지난주일 설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