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막16.5-6
십자가를 목격한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여인들의 행동은 용기 있고, 따듯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무덤은 비어있었습니다. 대신 천사(눅24.23)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눅24.6
믿음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십자가를 못 보았다면, 혹시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을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빈 무덤도 보고 있습니다.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지금 이 무덤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성경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부활의 첫 목격자들을 소개합니다. 놀랍게도 첫 증인들은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 은혜를 입고, 은혜를 잊지 않은 여인들이었습니다. 막16.9절에 막달라 마리아(전에 일곱 귀신 들렸던 여인/눅8.2) 가 부활의 예수님을 처음 만난 사람으로 소개됩니다.(요20장 참조) 그리고 누가복음 24장, 마태28장은 여인들이 처음 빈 무덤을 목격하고 제자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렸다고 소개합니다.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눅24/10)
그런데 사도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눅24.11),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막16.11) 제자들이 왜 믿지 못했을까? 궁금합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막16.14)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께 야단맞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도망가서 야단맞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해서 야단맞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연약하여, 두려워하는 것은 야단맞을 일은 아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야단맞을 일입니다. 2,000 년 전 빈 무덤에서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던 천사, 빈 무덤의 목격자 여인들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빈 무덤을 보라 그가 살아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