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 / 윤동주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것이요
1940년12월 윤동주 시인은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시절 절망의 시를 세상에 발표합니다. 그런데 제목이 팔복입니다. 성경 마태복음 5장에 기록된 팔복의 둘째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의 앞 부분을 8번 반복 하고 있습니다. 너무 절망적 이어서 정확하게 해석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지금 시인의 슬픔은 아픔일 것입니다. 그리고 아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나라를 잃어 버린 아픔이 절망으로 표현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눈물 뒤에 반드시 영원한 위로가 올 것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삶에 예기치 못한 일들로 인해 아플때가 있습니다. 개인적 아픔, 공동체적 아픔등... 아픔이 다양합니다. 그리고 이런 아픈 상황에서도 위로가 되는 사람이 있고, 더 큰 상처가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위로가 되는 사람은 ‘우리의 죄입니다.’ 하고 고백하는 사람이고, 아픔이 되는 사람은 ‘당신의 죄’입니다. 라고 지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분을 만나면 영원히 슬플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영원한 슬픔이 아닌
영원한 기쁨을 누리고,
나누고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