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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恨) Resentment / harbour a grudge

4/17/2020

 
4.17.2020 원정훈
 
한(恨) 이라는 단어는 한글자이지만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원통하다’, ‘억울하다’, ‘원통하게 생각한다’(have deep resentment) 의 뜻이 있습니다. 과거 어른들의 경우 ‘우리 민족이 한(恨)이 많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 민주화를 겪으면서 억울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도 한(恨)이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리적인 폭행, 성적차별, 사회적 부조리, 불이익등을 통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恨)이 없는 세상이 하나님 나라겠지요...
 
에스겔35장은 ‘세일산’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세일산은 창36.9절에 보면 에서/에돔의 중심지였습니다. 즉, 야곱과 에서 / 이스라엘과 에돔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밖에서 보면 에서/에돔은 늘 한(恨) 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훗날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고, 유다가 망할 때 바벨론 편에 서서 기뻐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다의 도망자들을 잡아서 바벨론에 넘기고, 헤브론을 점령하기도 하였습니다. 에스겔35.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옛날부터 한을 품고 이스라엘 족속의 환난 때 곧 죄악의 마지막 때에 칼의 위력에 그들을 넘겼도다.”
 
그리고 당시 에돔의 모습을 구약 오바댜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빼앗아 가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 뽑던 날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며.” / 오바댜1.11-12
 
우리가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을 입고 산다고 하면서 ‘한(恨)’을 품고 살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恨)을 품고 살다보면 우리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언젠가 그 한(恨)이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恨)’ Resentment 은 남도 아프게 하고, 나도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기억 하십시오 예수님 십자가에서 우리 삶의 ‘한(恨)’또한 죽었습니다. ​

약속

4/16/2020

 
4.16.2020       원정훈
 
‘악한 왕 / 악한 목자 / 악한 양’ 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는 그 힘으로 약한 상대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힘을 가지고 악하게 사용하는 왕, 목자, 양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다윗과 같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도자를 세우셔서 자신의 양들을 보호하십니다.(겔34.23)
 
우리가 아는 것처럼 다윗과 같은 왕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어떻게 백성들을 사랑하셨는지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그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왕의 사명을 이어가야 합니다.
 
왕과 백성, 목자와 왕, 양과 양, 모든 관계에 가장 중요한 것은 ‘화목’입니다. 화목은 빼앗지 않습니다. 화목은 서로 돌아보고 약함을 품어주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에스겔34.25-31
“내가 또 그들과 평화의 계약을 맺고 그 땅에서 맹수를 제거하여 그들이 빈들에서 안전하게 살고 숲속에서도 마음 놓고 잘 수 있게 하겠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고 내 산 주변 일대에도 축복하며 때를 따라 비를 내릴 것이니 그것이 축복의 단비가 될 것이다. 그리고 들의 나무가 열매를 맺고 땅이 농작물을 낼 것이며 그들은 그 땅에서 안전할 것이다. 내가 그들의 사슬을 끊고 그들을 종으로 삼은 자들의 손에서 그들을 구출해 낼 때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 것이다. 그들이 다시는 이방 나라에게 약탈을 당하거나 들짐승의 밥이 되지 않고 안전하게 살 것이며 그들을 놀라게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비옥한 땅을 주겠다. 그러면 그들이 다시는 그 땅에서 기근을 겪지 않고 이방 나라의 모욕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는 그들이 자기들의 하나님인 나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을 알고 자기들이 내 백성임을 알 것이다. 이것은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다.”

보라

4/12/2020

 
4.12.2020 원정훈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막16.5-6
 
십자가를 목격한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여인들의 행동은 용기 있고, 따듯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무덤은 비어있었습니다. 대신 천사(눅24.23)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눅24.6
 
믿음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십자가를 못 보았다면, 혹시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을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빈 무덤도 보고 있습니다.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지금 이 무덤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성경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부활의 첫 목격자들을 소개합니다. 놀랍게도 첫 증인들은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 은혜를 입고, 은혜를 잊지 않은 여인들이었습니다. 막16.9절에 막달라 마리아(전에 일곱 귀신 들렸던 여인/눅8.2) 가 부활의 예수님을 처음 만난 사람으로 소개됩니다.(요20장 참조) 그리고 누가복음 24장, 마태28장은 여인들이 처음 빈 무덤을 목격하고 제자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렸다고 소개합니다.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눅24/10)
 
그런데 사도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눅24.11),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막16.11) 제자들이 왜 믿지 못했을까? 궁금합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막16.14)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께 야단맞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도망가서 야단맞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해서 야단맞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연약하여, 두려워하는 것은 야단맞을 일은 아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야단맞을 일입니다. 2,000 년 전 빈 무덤에서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던 천사, 빈 무덤의 목격자 여인들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빈 무덤을 보라 그가 살아나셨다.” ​

천로역정/Pilgrim Progress

4/10/2020

 
4.10.2020       원정훈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고, 돌아가신 성금요일입니다. 죄송한 날이고, 감사한 날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2020년 사순절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들이 더 일어날지, 어떤 변화들이 올지 우리들은 예상을 하기가 어려운것 같습니다. 

‘천로역정 애니메이션’ 이 얼마전에 만들어 졌는데, 이번 코로나 일로 제작사가 무료로 제공합니다. 그리고 ‘뮤지컬 JUSUS’ 도 무료로 제공합니다. 부활절을 앞두고 가정에서 함께 좋은 기독교 영상들을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천로역정(天路歷程/ Pilgrim Progress)은 17세기 설교가인 존 번연의 작품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 처럼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내용은 그리스도인(Christian)이 곧 멸망할 도시를 떠나서 하늘나라를 향하여 가는 삶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당시 청교도들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기독교 소설입니다. 

  • 천로역정/ Pilgrim Progress
아래 링크에 이메일만 넣으면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는 언어 (한국어, 영어 등)로 관람할 수 있고, 4월 30일까지만 무료입니다.
https://www.revelationmedia.com/watchpilgrims/BGWP2/

침묵 (沈黙)

4/9/2020

 
4.8.2020 원정훈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막15.5
 
‘엔도 슈사쿠’ 라는 일본 작가가 실제적인 역사를 바탕에 두고 쓴 소설 중에 ‘침묵’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17세기 일본 선교의 역사적 사실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 2016년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일본의 기독교 탄압당시 예수회 신부들의 선교활동 이야기입니다. 사제들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 사진을 밟고 가지 않으면 당시 일본인 성도들을 끔찍하게 고문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때 고문당하는 성도들을 구하기 위해 내가 배교를 해야 하는가? 아니면 나의 믿음을 지키면서 성도들의 고통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이런 가운데 주인공 ‘로드리고’ 사제의 고뇌, 그리고 예수님과 대화하는 장면들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큰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들이 고통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즉, ‘악인의 형통함과 의인들의 고통’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언급합니다.
(시편73편, 하박국 시대와 같은 고민을 던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예수님이 빌라도 법정에 서십니다. 많은 군중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거짓으로 고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말씀 하시지 않습니다. 침묵하십니다
. 어차피 가야할 길 가시기에 말없이 가시는 것 같습니다. ​

기억

4/8/2020

 
막14.71-72      4.8.2020 원정훈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예수님과 같이 기도하러 갔지만 베드로는 잠들고 맙니다. 고단하여 잠을 잔 것이 죄일 수 없습니다. 그 이후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혀가신 곳 까지 따라갔습니다. 이 또한 제자의 도리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대제사장의 여종이 베드로를 알아보고 예수의 제자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3번이나 부인합니다. 마지막은 저주하고, 모른다고 맹세까지 합니다. 만약 이 때 베드로가 아닌,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면 우리는 어땠을까요?
 
베드로는 이 때 자기 자신을 돌아봅니다.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한 순간 무너지는 자신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신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런데 그 배신을 아셨던 순간에도 야단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들의 연약함을 아시는 예수님은 야단치지 않으십니다
. 단지 우리가 우리들의 연약함을 깨닫고, 그래도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주님을 기억하기를 원하실 것 같습니다.

​

시험과 기도

4/6/2020

 
마가14.37-38  4.6.2020 원정훈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십자가를 앞에 두신 예수님께서 제자 몇 사람을 데리고 기도하러 가십니다. 그런데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제자들은 잠이 들고 맙니다. 잠들었던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서 기도하라”


시험이 없는 삶은 없습니다. 그런데 시험에 빠지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고도 별 일 없이 살던 세상에 ‘큰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금 이라도 기도해야 합니다. 마침 고난주간이네요...잃어 버렸던 기도를 회복할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4/3/2020

 
마가13.32-37   4..3.2020 원정훈
 
요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마음가짐들을 새롭게 하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자신들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건강과 경제가 동시에 위협받는 특수한 상황에서 믿음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많은 고민들을 합니다. 목사인 저도 여러분들의 고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평소보다 성경말씀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성경의 시작은 세상의 기원(처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성경 마지막은 세상의 끝(종말), 땅의 역사의 끝으로 마칩니다. 기독교는 시작과 끝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이 시작과 끝 사이에 존재합니다. 시간 밖에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의 시간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깨어있으라 / 종말을 준비하라”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은 모든 사람들에게 예외가 없습니다. 개인적인 마지막 순간이 있고, 역사적인 마지막 순간이 있습니다. 그 마지막을 늘 준비하고 살아야 하는 말씀을 요즘 실감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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