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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7th, 2021

2/27/2021

 
시47     2.25.2021 원정훈

역사를 보면 ‘어떤 왕(지도자)이 통치하였는가?’에 따라서 백성들의 삶의 질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후대에 좋은 왕(지도자) 나쁜 왕(지도자) 평가를 받습니다. 물론 이 또한 관점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기준으로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백성들을 위한 마음과 정책입니다. 즉, 백성들을 위한 옳은 일을 하였는가? 두 번째는 권력자 개인의 옳음입니다. 자기 자신의 삶을 바르게 하였는가?  그런데 이런 지도자는 역사 속에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년 1월 1일 첫 예배 시에 찬송으로 올려드린 시편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높이라”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을 왕으로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왕으로 인정하고 높이는 것은 ‘년 1회 이벤트가 아닙니다.’  진짜 왕을 잘 섬기고, 전능한 왕을 은총을 누리기 원한다면 - 일상에서 왕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왕이 원하는 일에 마음을 쓰고, 왕이 싫어하시는 일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전에 매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왕이신 나의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였는데, 지금은 여러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고백을 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매주일 왕을 위한 이벤트가 아니라, 예배가 되고, 예배는 우리들의 진실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왕 되심에 걱정하지 마시고, 우리가 좋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바랍니다. ​

진정성(眞正性)

2/27/2021

 
2.22.2021원정훈
 
진정성에 두 가지 한자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眞正性이고, 하나는 眞情性입니다. 영어의 Sincerity Authenticity 를 眞正性 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의 단어는 ‘바름, 진실한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고, 후자는 ‘바름, 진실을 통해서 얻게 되는 ‘감동’입니다. 아래는 매일성경의 좋은 글이 있어서 나눕니다.
 
“잘못을 지적하고 경고하자, 용서를 구합니다. 용서했더니 금방 똑같은 잘못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잘못, 사과, 용서가 일곱 번이 반복된다면, 그의 회개에는 진정성이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일곱 번 반복해서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그 사람을 잘못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길은 ‘진정성을 증명하라’는 요구가 아니라 ‘다음 번 용서도 준비해 놓고 있겠다’는 끈질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포기하지 않고 여태 용서해 오셨는데, 내가 포기해버린 용서는 없습니까?”
 
우리가 예수님께 늘 감사한 이유는 용서하시겠다는 강한 의지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의 진정성(眞正性)이 우리에게 늘 감동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7.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진짜?

2/17/2021

 
​진짜 따라 올 수 있어?                2021.2.16 원정훈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 눅14.25-27
 
하나님의 말씀인데 언제  읽어도 참 버거운 말씀입니다. ‘조용히 교회 다니고 싶고, 주일 영상예배는 잘 보고 있는 요즘…’이 말씀은 어쩌면 외면하고 싶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마음 한편에 ‘제자 될 사람들(목회자/장로/선교사/안수집사/ 권사) 이 잘해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교회 김광식 부목사님께서 이 부분을 다른 각도로 글을 써 주셔서 나눕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 어떤 "값"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상식적으로 무엇을 "준비"할 것인지를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가 되기 위한 방식으로 말씀하신 것은, 무언가를 "더하는" 준비가 아니라, "빼는" 준비입니다. 게다가, 적절한 양을 빼는 게 아니라, "다" 빼는 준비를 요청하십니다. 이 일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동행하는 자는 있어도, 제자가 되기는 어려운 겁니다.

그런데, 또한 반대로 생각해 보면, 어쩌면 쉬운(?), 다른 말로,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가만히 보니, 요청하신 일이, Ph. D 학위도 아닙니다. 돈도 아닙니다. 어떤 사회적 신분도 아니고, 미모는 더욱 아닙니다. 얼마나 다행인지요. "무언가를 갖추어라"라고 말씀하셨다면, 어쩌면 불가능한 것들을 마주하게 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갖추라(+)는 말씀이 아닌, 빼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쉽지 않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불가능은 아닙니다. 뺌(-)의 영성은 불편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 삶에 수많은 더하기(+)를 준비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만족을 줄 거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고, 김광식 목사님 글을 보면서 다시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이단들처럼 극단적인 삶을 강요하거나,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됨의 의미가 무엇일까?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함’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면,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과 목적이 달라질 것입니다. 재물을 사랑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돈을 벌고 사용하는 방식이 달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땅에서 만나고 알고 지내는 모든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질 것입니다.
 
제자가 되는 것은 극단적인 삶의 선택이라기보다, 지금 내 삶의 방식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하나하나가 주님 보시기에 옳은가?” 입니다. 주님이 앞서가시다가 갑자기 뒤돌아서서 나를 쳐다보시고 말씀하십니다. “진짜 따라 올 수 있어?”

이때 이렇게 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님 따르고 싶은데 많이 유약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데려가주세요.” 

February 13th, 2021

2/13/2021

 
2.11.2021 원정훈
 
뉴스1. 이스라엘 북쪽 갈릴리 지역에 로마 군인에 의한 살인사건
뉴스2. 남쪽 예루살렘의 실로암 망대 무너져 18명 죽음
 
사람들의 해석 =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리 죽었을까?
예수님의 해석 = 너희들 보다 죄가 더 많아서 죽은 것이 아니다.
                   =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와 같이 망한다.


무화과 나무 이야기
- 열매를 얻기 위해 3년을 기다림
- 주인의 결정 = 찍어버려라, 땅만 못 쓰게 되었다.
- 관리인 요청 = 거름도 주고 관리를 하겠습니다. 1년만 시간을…
                  = 그래도 열매가 없으면 찍어버리소서.


종합뉴스3.   회개하지 아니하면 망한다.
                 열매가 없어도 망한다.
                 시간이 그리 많지가 않다.


팩트 체크   눅13.1-9

빛, 눈, 몸

2/10/2021

 
​2.5.2021 원정훈

누가11.33-3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밀실에 두거나 그릇으로 덮어 두지 않고 그것을 등잔대 위에 올려 놓는 것은 들어오는 사람이 그 빛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표준)  네 눈은 몸의 등불이다. 네 눈이 성하면, 네 온 몸도 밝을 것이요,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네 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지 살펴보아라. 네 온 몸이 밝아서 어두운 부분이 하나도 없으면, 마치 등불이 그 빛으로 너를 환하게 비출 때와 같이, 네 몸은 온전히 밝을 것이다."
 
위 본문은 잘 아는 본문이지만, 해석이 조금은 어려울 수 있는 본문입니다. 33-35절은11장14절 부터 이어지는 내용으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에 대한 결론이고, 37절 이후는 결론에 따라서 나타나는 심판의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이 어두운 세상(죄로 인한 죽음의 증상들이 있는 세상)에 빛(치유와 회복을 주시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합니다. 이것은 빛의 문제가 아니라, ‘빛을 보지 않는 눈의 문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빛이 비치고 있어도 - 눈이 온전하지 않아서 – 빛을 보지 못하고 – 빛을 보지 못하기에 – 몸(삶)도 온전하지 못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빛도, 어두움도 늘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나의 말과 행동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는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나타냅니다. 늘 빛을 보고, 빛을 받아, 빛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선택

2/2/2021

 
​눅10.25-42     2.2.2021 원정훈

우리의 삶은 하루하루가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한 생각을 선택할 수 있고, 악한 생각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감사를 선택할 수도 있고, 불평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누가복음 10장25절 - 37절은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 주는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에 보면 같은 상황에서 도움을 선택한  사람과 외면을 선택한 사람이 나옵니다.
 
이 대화는 율법 학자와 나눈 대화 가운데 나오게 됩니다. 즉, 율법의 정신이 무엇인가? 가 핵심주제입니다. 율법의 정신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고 동의합니다. 하지만 율법을 아는 사람은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율법을 모른다고 생각했던 사마리아 사람은 사랑을 실천합니다. 누가 진짜 율법에 순종하고 사는 사람인가? 예수님께서 물으시는 장면입니다.
 
두번째 이야기, 우리가 잘 아는 마리아, 마르다 이야기 입니다. 잘 잘못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밥해 주는 봉사자가 없으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굶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말씀을 듣는 것과 듣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좋은 것을 선택한 것을 칭찬하십니다.
 
사마리아 사람도, 마리아도 좋은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좋은 것을 선택할 힘은 ‘하나님 사랑’에서 나오는 것을 보게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자기를 부인하고 (욕심을 내려놓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내 안에 욕심의 소리가 아닌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오늘도 ‘좋은 선택’을 하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기름부음

2/2/2021

 
​2.1.2021 원정훈
 
요한1서2.27-28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1John 2.127-28
As for you, the anointing you received from him remains in you, and you do not need anyone to teach you. But as his anointing teaches you about all things and as that anointing is real, not counterfeit--just as it has taught you, remain in him. And now, dear children, continue in him, so that when he appears we may be confident and unashamed before him at his coming
 
하나님의 성령과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에 관한 진리의 말씀이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지속적으로 우리 안에서 거짓 없는 참된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이제 우리들의 믿음의 삶은 ‘그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과 말씀의 교제가 매일 이루어지고,  무슨 생각이나, 말과 행동을 할 때, 그 인도하심에 합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물로 이렇게 하는 것을 우리 모두 알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의 안에 거하라”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의 삶의 마지막 그림을 소개합니다. “그가 강림하실 때….”
글을 쓰다가 예전 어린이 복음성가가 떠오릅니다. “이다음에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 뭐라 말할까, 그때에는 부끄러움 없어야지 우리 모두 사랑해….”

세상속에 나

2/2/2021

 
제자    1.30.2021 원정훈

2021년 1월이 지나갑니다. ‘벌써’라는 단어도 이제 식상합니다. 이 식상함에 익숙함이 두려운 것 같습니다. 아래는 지난 일주일 하게 된 질문들입니다. 

제자란 누구인가?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은 제자로 부름을 받은 것인가?  성도, 예배자, 그리스도인, 제자의 단계와 과정은? 예수님은 왜 12명과 3년의 시간을 보내셨는가? 결국 그 12명 중 11명이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남기게 됩니다. 

지난 일주일 누가복음9장을 아침마다 꼼꼼하게 보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매일성경 본문이기도 하였지만, 늘 고민하게 되는 ‘그리스도 공동체의 핵심 가치’에 대해서 많은 답을 주고 있음을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누가복음9장은 1-62절로 되어 있습니다. 1장의 분량으로 제법 많은 분량입니다. 그런데 전체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제자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절에 “예수께서 12제자를 불러 모으사”로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이어서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사역지침을 말씀하신 이후 사역 현장으로 보내십니다. 세상의 반응은 당시 최고 권력자 “헤롯왕이 당황”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배움과 경험 등을 통한 훈련들이 이어집니다. 마지막57-62절은 당시 문화적인 이해가 필요하지만, ‘부적격한 제자의 세계관’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10장에서 12명 보다 확대된 70명의 제자를 파송하시는 내용과 함께 또다시 ‘제자도’가 소개됩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제자로 부름을 받은 우리’에 대해서 좀 더 정리해서 꼭 나누고 싶은 내용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먼저 ‘제자도’라는 관점을 가지고 누가복음 9장을 조용히 읽어 보시면 많은 유익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또한 2021년 ‘서로 사랑’ 이라는 주제를 요한1서 본문으로 주일 나누고 있는데, 제자도와 요한신학(요한복음/요한서신/요한계시록)의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 사이에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제자도 ’와  매우 밀접한 진리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특별히 요한복음16,17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의 내용을 보면, 제자로 존재하는 이 땅의 삶,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아침에 성경을 보면서 성도들을 생각하다, 조금 어려운 글을 씁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지금의 상황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제자들과 지내셨을까, 어떤 사역을 하셨을까?’ 딱히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말씀을 잘 가르쳐 주셨을 것 같습니다. 지금 같이 예측되지 않는 시대는 우리 모두 일차적으로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가짜? 뉴스를 포함한 수많은 정보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고(저는 이것 또한 이 시대의 거짓 교사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제자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

집

2/2/2021

 
눅9.28-36     1.28.2021 원정훈

누가 9장은 전체적으로 ‘제자’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자로 부르시고 - 하나님 나라를 다양하게 (치유 / 잔치 / 기적 등) 경험하게 하십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제자의 삶은 ‘자기 부인의 삶’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세상의 욕심과 죄의 본성을 거부하고, ‘공평과 정의 그리고 사랑의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도’에 관한 말씀을 마치시고 제자 몇 명과 함께 산에 기도하러 가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건이 나타납니다. 엘리야, 모세가 나타나서 십자가에 관한 대화를 하시고, 예수님의 모습이 거룩하게 변합니다. 졸던 제자들이 깨어서 이 광경을 봅니다. 그리고 놀라운 생각을 합니다. “여기서 집을 짓고 살면 어떨까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집’ 좋아합니다. ‘집’이 나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주거의 안정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 집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 ‘이스라엘 성지순례’(왜 ‘성지’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지금 그 땅이 거룩 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성경 역사지 탐방’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를 하게 되면, 많은 기념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곳이 교회의 모습과 교회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건물을 지어서 관광객을 유치합니다. 

혹 베드로가 아주 일찍 이런 관광산업에 눈을 뜬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성경이 정확하게 말씀합니다.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이어서 하늘의 음성이 들립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그리고 소리가 그치고 결론을 말씀합니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이 땅의 모든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원 이후 제자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세상 욕심의 소리를 듣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사는 삶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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