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 눅14.25-27
하나님의 말씀인데 언제 읽어도 참 버거운 말씀입니다. ‘조용히 교회 다니고 싶고, 주일 영상예배는 잘 보고 있는 요즘…’이 말씀은 어쩌면 외면하고 싶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마음 한편에 ‘제자 될 사람들(목회자/장로/선교사/안수집사/ 권사) 이 잘해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교회 김광식 부목사님께서 이 부분을 다른 각도로 글을 써 주셔서 나눕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 어떤 "값"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상식적으로 무엇을 "준비"할 것인지를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가 되기 위한 방식으로 말씀하신 것은, 무언가를 "더하는" 준비가 아니라, "빼는" 준비입니다. 게다가, 적절한 양을 빼는 게 아니라, "다" 빼는 준비를 요청하십니다. 이 일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동행하는 자는 있어도, 제자가 되기는 어려운 겁니다.
그런데, 또한 반대로 생각해 보면, 어쩌면 쉬운(?), 다른 말로,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가만히 보니, 요청하신 일이, Ph. D 학위도 아닙니다. 돈도 아닙니다. 어떤 사회적 신분도 아니고, 미모는 더욱 아닙니다. 얼마나 다행인지요. "무언가를 갖추어라"라고 말씀하셨다면, 어쩌면 불가능한 것들을 마주하게 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갖추라(+)는 말씀이 아닌, 빼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쉽지 않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불가능은 아닙니다. 뺌(-)의 영성은 불편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 삶에 수많은 더하기(+)를 준비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만족을 줄 거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고, 김광식 목사님 글을 보면서 다시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이단들처럼 극단적인 삶을 강요하거나,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됨의 의미가 무엇일까?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함’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면,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과 목적이 달라질 것입니다. 재물을 사랑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돈을 벌고 사용하는 방식이 달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땅에서 만나고 알고 지내는 모든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질 것입니다.
제자가 되는 것은 극단적인 삶의 선택이라기보다, 지금 내 삶의 방식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하나하나가 주님 보시기에 옳은가?” 입니다. 주님이 앞서가시다가 갑자기 뒤돌아서서 나를 쳐다보시고 말씀하십니다. “진짜 따라 올 수 있어?”
이때 이렇게 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님 따르고 싶은데 많이 유약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데려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