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겪게 될 때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때 기억할 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게 되면, 환경이나 누구 탓을 하지 않고,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순종하고 살고 있는지? 냉정하게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억함은 우리 삶의 가장 큰 복입니다. 하지만 ‘영적 기억상실증’은 우리 삶에 가장 무서운 질병입니다.
4.19.2024 원정훈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겪게 될 때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때 기억할 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게 되면, 환경이나 누구 탓을 하지 않고,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순종하고 살고 있는지? 냉정하게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억함은 우리 삶의 가장 큰 복입니다. 하지만 ‘영적 기억상실증’은 우리 삶에 가장 무서운 질병입니다. 4.11.2024 원정훈
가끔 제가 글을 나누면서 제목을 선택할 때 가급적 한 단어를 주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길게 썼습니다. 그런데 제목만 보아도 제가 무슨 글을 쓸 것인지 대부분 아실 것 같습니다. ‘감사와 불평’ 그리고 ‘우울과 교만’은 전문용어로 ‘한 끗 차이’ 같습니다. 감사와 불평 그리고 우울과 교만은 내 삶에 일어난 현상에 대한 자의적 ‘해석과 마음’입니다. 즉, ‘내가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내 마음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감사와 교만은 늘 우리 마음과 삶에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은혜를 기억하면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은혜를 잊고 세상을 바라보며 욕심을 부려서 욕심이 채워지면 교만하기 쉽지만,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삶의 모든 것이 은혜 임을 알게 될 때 ‘교만’은 불가합니다. 그리고 은혜 앞에 우울도 불가합니다. 오늘도 은혜를 기억하고 은혜 안에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4.4.2023 원정훈
감정을 잘 관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좋을 때, 나쁠 때 우리 삶에 늘 있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것은 나는 좋은 데, 상대는 나쁠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나는 감정이 상했는데 상대는 아무렇지 않아서 내 감정이 더 상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데, 나만 감정이 상하고 함께 있는 사람들은 웃고 즐거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감정과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 늘 동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동일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 성숙의 시작일 것 같습니다. 감정은 다른 말로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 내면에 있는 ‘감정과 마음’이 나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마음이 상하면 얼굴에 인상을 쓰기도 하고, 목소리가 커지기도 하고, 행동을 거칠게 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좋으면 얼굴에 평안함이 묻어납니다. 말과 행동도 따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마음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감사한 것은 예수님을 믿게 된 이후 우리들의 마음에 ‘선함’이라는 주님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오늘 하루도 나의 감정을 주님의 선함으로 이길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4.3.2024 원정훈
롬5.9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통하여 우리가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마지막 날에 우리도 구원(부활)받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때, 지금의 몸이 아닌, 부활의 몸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부활이 있기에 부활을 믿는 우리들은 부활하게 될 귀한 존재들(새로운 피조물)입니다. 3.26.2024 원정훈 목사
마가14장32-52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신 내용을 기록합니다. 이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마음이 심히 괴로워서 죽을 것 같다”. “십자가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까?” 등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1 하나님께 내 소원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결론은 “아버지의 원대로 하세요” 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침묵이 응답임을 확인하십니다. 그리고 내 마음의 소원이 아닌, 졸던 제자들 깨워서 순종의 자리에 가십니다. 기도 2 순종의 자리를 확인하고, 실제 순종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기도하러 함께 갔지만, 졸던(자던)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예수님 잡히실 때 ‘칼’로 잠깐 저항해 봅니다. 하지만 그 저항이 길지 않습니다. 50절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기도하면 사명에 순종할 수 있고, 기도하지 않으면 사명의 자리에서 도망하게 됩니다. 고난주간은, 우리의 순종과 사명의 자리를 돌아보고, 기도하여 다시 사명을 회복하는 기간입니다. 3.7.2024 원정훈
누군가 나로 인해 행복할 수 있다면, 누군가 나로 인해 위로받을 수 있다면, 누군가 나로 인해 평화를 누릴 수 있다면, 나는 그 누군가에게 가족같은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고아 같은 우리의 가족이 되셔서 또 다른 가족들과(성도) 함께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한12.18 2024.3.1 원정훈
교회가 정착한 지 불과 30여 년 즈음, 한국 기독교는 일본으로부터 큰 시련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박해 중에도 종교를 유지하기 위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교회는 3월1일 조국 독립을 위한 만세 운동을 이끌게 됩니다. 그리고 3.1일 이후 기독교는 교회 폐쇄와 성도 수 감소 등 큰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믿음을 지켜냅니다. 특별히 어려움 속에서도 나라를 사랑하고, 어려움 당한 백성들의 이웃으로, 그들의 아픔을 나누는 가족답게 십자가 정신을 발휘하였습니다. 일제의 총칼 앞에서 신앙의 자유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 만세 운동을 하시던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은혜 안에 강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늘 은혜 없는 강한 사람들이 주도권을 잡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런 왜곡된 강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양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은혜를 아는 사람들조차도 진정한 강함에 대한 이해가 흔들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존재들입니까? 우리는 은혜 안에 강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그 지식으로부터 나오는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수호하고자 헌신과 희생을 아끼지 않는 진정한 강자들입니다. 그리고 은혜 안에 강한 사람들은 말 없이 자기 자리를 지킵니다. 묵묵히 만세 운동을 했던 것 처럼, 우리가 마땅히 드려야 할 예배의 자리, 누군가를 위한 중보 기도의 자리, 공동체를 위한 헌신과 수고의 자리,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게 됩니다. 이 시대의 소망은 ‘은혜 안에 강한 자들’입니다. 진정한 강자들이 그 시대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2.23.2024 원정훈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 박노해 / 다시 중 – 우리가 희망이고, 우리가 새 길이고, 우리가 이미 좋은 세상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2.15.2024 원정훈
삼상14.47-48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사울 왕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왕이신 하나님, 나를 왕 세우신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하면 ‘불순종’입니다. 하나님은 진멸을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부분적 순종을 합니다. 사울 왕은 계산해서 나에게 유익한 선택적 순종을합니다. 본인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순간, 왕의 자리가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이 왕이 아니라, 내가 왕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하나님이 왕이신지, 내가 왕이신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누가 결정권 자인가’ 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삼상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 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전능하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순종’입니다. ‘순종’이 형식적 예배드림 보다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순종의 결과가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2.8.2024 원정훈
레위기26.4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한 나의 약속을 기억하고 그들의 땅을 다시 돌아보겠다. 하나님의 ‘기억’에 대해서 나눕니다. 성경에 종종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럼 잊기도 하시나?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의 근거는 ‘우리들의 기억’입니다. 우리는 잊기도 하고, 생각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억’은 우리들의 기억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기억 ‘자카르’라는 개념은, 평소 잊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마음속 깊은 곳에 새기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레위기26.42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애굽에서 구원받고 가나안에 가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 백성들에게 지금 광야에 있는 이유, 가나안에 가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기억(계획)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향한 마음도 동일하십니다. 우리를 절대 잊지 못하고 계십니다. 아니 잊을 수 없는 관계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약속의 말씀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유일한 위로입니다. 이사야49.15-16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
담임목사님의 설교 및 매일성경 말씀에 대한 묵상이 업로드 됩니다. 더욱 깊은 말씀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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