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에 대한 기독교적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복 받았다’, 두 번째는 ‘부정하다’입니다. 하지만 두 관점은 부자를 바라보는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본주의 세계관이고, 하나는 사회주의 세계관입니다. 그러므로 ‘부자’에 관하여 흑, 백 논리로 이야기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매우 건강하지 않은 시각입니다.
마태19.15-22절은 부자청년과 예수님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이 청년은 매우 훌륭한 사람입니다. 율법을 잘 지킨 부자입니다. (요즘 이런 사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온전하고자 하면,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 하지만 청년은 그렇게 까지 하지는 못합니다. 이때 제자들이 질문합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신다.” 즉, 구원은 인간의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제자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부’를 축복으로 여기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대변합니다. 초기 제자들은 부와 명예=성공을 위해 예수를 따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잘 지키는 ‘성공한 부자’를 떠나게 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제자들에게 매우 당황스러운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의 ‘당황’ 속에 우리를 보게 됩니다. ‘이 정도면 훌륭한데?’, ‘크게 잘 못된 것은 없는 것 같은데?’ 예수님(기독교)이 지나치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주님을 따르는 삶이 – 구원의 기쁨과 감사인지? 문화인지? 투자인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것인지?
P.S. 우리가 100점 그리스도인 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100점 맞아야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게도 은혜로 하나님 백성 되었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계산하고, 머리 쓰지 말고 순수하게 주님을 예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의 사랑(투자) 받은 주님의 백성들 모두 평안하시고, 힘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절대 손해보지 않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