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 로미서7.23-25
바울의 고백은 바울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인류의 실존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본문에 대해서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들이 고민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고백한 시점이 바울의 회심 이전을 이야기 한 것인가? 아니면 회심 이후를 이야기 한 것인가? 여러분은 어떤 것 같습니까? 대부분 후자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도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고백은 이미 구원 받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 땅의 실존적 현실입니다. 이 현실의 삶에 매일 다양하고,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로마서 말씀의 내 마음 안에 두 세계가 있는 것처럼, 세상에도 두 세계가 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사탄의 세력이 존재합니다. 때문에 갈등하는 세상입니다. 매일 영적 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민수기의 광야 40년을 보면 출애굽하고, 홍해를 건너고, 말씀을 받고, 매일 기적의 삶(구름기둥, 불기둥, 만나, 메추라기)의 삶을 살면서도 다양한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예를들면 우상숭배, 리더십 갈등, 먹고 사는 문제, 전쟁 등 광야의 삶은 매일 기적임에도 불구하고 절대 쉽지 않습니다. 고단한 삶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것일까요? 광야에서의 유일한 생존원리, 하나님 의존함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광야는 사람의 지혜로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협력을 잘 한다고 살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우리를 이런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광야에서야 비로써 하나님을 찾고,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야의 훈련은 고생하는 훈련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 하는 훈련입니다. 뿐만 아니라 광야에 가야 우리들의 숨겨진 본성들 또한 드러나게 됩니다.
21세기 오늘 우리들의 광야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보다 더 심하게 마음의 법과 육신의 법의 갈등이 일어나는 우리들의 마음이 또한 광야입니다. 이 광야에서 살아남는 방법도 동일합니다. 중동의 광야에서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존한 것처럼 말씀과 기도는 유일하게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21세기 우리들의 유일한 생존법입니다. / 금요기도회 말씀 중